빈지노 - Always Awake

 

'커피 한 잔을 비운 다음에,
심박수를 키운 다음에,
한 숨을 쉼표처럼 찍고 다시
한밤중에 싸움을 해!
왜?
왜냐면 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
yo I gotta live my life now, not later!'

 

 

01. 중학생 때부터 인터넷 방송을 정말 좋아했다. 그 당시 아프리카TV는 정말 혼돈 그 자체였고, 인터넷 스트리밍의 무법지대를 생중계로 보는 느낌이었다. 처음 불닭볶음면 소스를 혀에 댔을 때, 느껴오는 맛처럼 내게 인터넷 방송은 자극의 원천제였다. 하지만 너무나 큰 자극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다. 결국, 나의 혀는 담백한 맛을 찾길 원했었고, 그런 음식을 파는 곳이 바로 '게임방송'이었다.

 

02. 그렇게 나는 중학생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방송의 방청객으로 살아왔다. 누가 나에게 방청객 알바비를 주는 것도 아닌데 정말 열심히 보고 자라왔다. 그러다 문득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버는 재주가 생기니 갑자기 마음 속이 꿈틀거렸다. '이제 방청객말고 진짜 무대에 올라와볼까?'

 

03. 하지만 '영화를 논평하는 것'과 '영화를 직접 찍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방송을 통해 내 스스로가 말주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게임 진행을 맛깔나게 하거나, 일반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하거나, 전혀 색다른 루트로 게임방향을 진행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그저 이전에 게임을 하였듯, 천천히, 오로지 내가 진행하고 싶은 일반 플레이어의 정석대로 게임을 진행했다. 소위 말하는 괴기플레이, 장인플레이, 변칙플레이, 엉뚱플레이를 내 방송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 내 방송은 그렇게 크게 재밌지는 않겠다'

 

04. 1월달에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자의식과잉의 절정체였다. '그동안 오래 겜방을 봤으니 분명 방송을 잘할거야!', 택도 없는 소리다. 무분별한 인터넷 세상에 내 얼굴을 함부로 노출시키는 것은 위험하지만, 반대로 보여지지 않으면 스스로 사각지대가 되어버리는 인터넷에서 내 얼굴을 찾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 지구상 인구 중, 트위치를 보는 사람을 만나는 확률, 그리고 그 중 내 방송채널에 들어온 사람을 만날 확률. 마케팅 회사를 일하면서 100만 유튜버를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찾지 않으면, 100만 유튜버도 내 머릿속에서는 소위 말하는 '듣보잡' 인물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RP고 뭐고 그냥 캠을 키고 방송을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

 

05. 여전히 내게 게임방송은 즐거운 취미활동이다. 하지만 휘발성이 짙은 취미의 문제점은 기록, 남겨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소고소고 스테이지, 유튜브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게임 녹화본을 부랴부랴 챙겨서 '프리미어 프로'에 한번 낑겨 넣어보고, 게임 장르와 진행 방식에 따라 어떤 스타일로 편집할지 고민하고, 한 편을 편집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영상이 완성된 후 마지막 모니터링을 거친다. 그리고 샤워를 하거나 잠시 딴짓을 하며, 유튜브 썸네일을 구상한다. 구상한 썸네일에 따라 그날 제작 소요시간이 결정된다. 그렇게 발퀄 썸네일까지 제작이 완료되면, 유튜브에 조회수 100회 조차 찍기 어려운 게임 영상 하나가 "뾱~!" 올라온다.

 

'발디의 수학교실' 패러디로 만든 '개스코인의 블본교실', '의외로 어그로 조회수를 얻었다'
보컬로이드 - 뱀파이어 커버를 패러디한 피굶야수 '그림체는 똥손이지만, 최대한 연상하도록 구도를 애먹었다'
동방봉마록 하드 원코인 영상 - 미마,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썸네일이다'

06. 처음에는 다시 영상 편집을 만지면서 스스로에게 반신반의했다. '나는 결국 또다시 현실도피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 얻지 못할 귀중한 시간들을 이상한 곳에 할애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의심속에서 미루고 미뤘던 이전 게임 플레이 영상부터 동방프로젝트 구작, 블러드본을 차근차근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만들어보니 점점 나만의 작은 게임 영상 앨범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단순히 유튜브에서 그냥 긁어오는 미리보기 이미지가 아니라 손수 직접 만든 썸네일로 스테이지를 차곡차곡 채우니 무언가 뿌듯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좀 더 내 채널을 팔레트처럼 다채롭게 꾸미고 싶어!'. 오죽하면 할 게 없을 때마다 바로 '프리미어 프로'를 반사적으로 키기 시작했다.

최근 2주 간 '소고소고 스테이지' 업로드 영상

07. 비록, 누적 조회수 1,000도 안되지만. 변화는 조금씩 생기고 있다. 우선 유튜브 분석기를 통해 누적 조회수와 시청 시간량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순 시청자수가 꾸준히 증가함을 통해 사람들이 내 영상에 5초라도 시간을 할애 해준다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게임 영상이 조회수 100회를 돌파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다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08. 무엇보다 잠들기 전이나 잠시 심심할 때 도무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으면, 나는 내가 편집한 영상을 가만히 틀어서 본다. 그러면서 피식피식 웃거나, 너무 자주 봐서 하품을 길게 내뱉다 잠을 청하기도 한다. 정말 스스로 만든 최고의 수면제다.
 '누가 이런 영상을 보러 오겠냐?' 라는 생각과 '그래도 누군가 이 영상을 봤겠지?'라는 생각의 교차. 그 지점에서 정말 복잡미묘한 희열과 아쉬움을 함께 느낀다. 어쩌면 영원히 구독자 100명은 커녕 50명도 채우지 못한 채 영상수만 100편이 넘는 낡고,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게임 채널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어떠랴. 그랬으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오늘도 편집을 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다음편을 만들어서 공개하고 싶다. 자, 이제 편집하러 가자.